낙선재 일곽
문화원Ⅰ 2013.11.22
 


왕실 가족들이 가장 최근까지 생활하던 곳이 바로 낙선재입니다. 낙선재는 헌종임금이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하여, 중희당 동쪽에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 등을 지었습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수렴청정이 끝난 순원왕후를 모신 곳이었습니다.

1) 장락문
낙선재의 정문입니다. 장락문은 길이길이 즐거움을 누리라는 뜻입니다. 장락문은 할머니 신선이 서왕모가 사는 월궁의 이름으로 문 안쪽이 신선의 세계처럼 근심 걱정 없는 즐거운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편액의 시원시원한 글씨체는 흥선대원군이 쓴 것입니다.



2) 낙선재 
낙선재라는 이름은 영조 때 등장하지만 지금의 낙선재는 1847년 헌종이 후궁인 경빈 김씨를 맞이하면서 왕실의 사생활 공간으로 쓰기 위해 지은 것입니다. 헌종은 많이 아꼈던 경빈 김씨 옆에 오래 머물기를 바라셨지만 경빈 김씨를 맞이하고 2년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낙선재는 대한제국 황실가족들의 아픈 역사와 함께 한 곳이고 가장 가까운 시간까지 황실가족이 머물렀던 곳입니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순종황제와 부인인 순정효황후께서 마지막까지 머무셨던 곳으로 특히 순정효황후께서는 광복과 한국전쟁 속에서 이곳 낙선재를 꿋꿋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강제로 보내져 일본사람과 결혼까지 한 고종황제의 둘째아들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여사 그리고 역시 일본에 강제로 보내진 막내딸인 덕혜옹주께서 돌아와 1989년 돌아가실 때 까지 이곳 낙선재에서 생활하셨습니다.


낙선재는 창덕궁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사대부집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낙선재는 평소 근검절약을 실천하셨던 헌종의 뜻에 따라 단청을 칠하지 않았습니다. 건물의 모습도 일반 양반가의 한옥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 낙선재에서는 다양한 마루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방과 방사이의 대청마루가 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거실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쪽마루는 기둥이 없이 한 두 조각의 나무를 가로로 대어 만든 마루로 주로 행랑 앞에 놓여있습니다. 또 하나는 낙선재에서의 여유와 조상들의 멋을 알 수 있는 누마루입니다. 누마루는 다락방 형태의 마루로 기둥을 세워 만든 마루를 말합니다. 누마루 밑은 불을 지피는 아궁이입니다. 벽 앞쪽에는 여러 조각을 붙여서 벽을 장식해 놓았는데 이것은 얼음이 깨져있는 것을 형상화 한 것으로 빙열무늬라고 합니다. 화재를 예방하는 의미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멋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또 누마루 아래 쪽 기둥에는 구름 모양을 조각해 놓아 누마루가 하늘에 떠 있는 천상의 세계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낙선재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것들이 일본식으로 바뀌었던 것을 지금은 다시 복원하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낙선은 ‘선을 즐긴다’는 뜻으로 맹자의 한 구절의 의미를 해석한 것으로 임금님은 이곳에서 인의와 충신을 지키며 선을 즐겨 하늘의 관직과 녹봉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를 갖고 있는 이곳은 헌종의 애틋한 사랑과 기울어 가는 한 왕조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후대에 전하여 주고 있으며 궁궐의 다른 전각과 달리 아직까지 사람이 살았던 훈훈함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석복헌은 헌종 14년(1848년) 후궁인 순화궁 경빈 김씨의 처소로 만들어 졌으며 낙선재 동쪽에 위치하여 안사랑채 역할을 하였습니다. 본래 세자궁이었지만 낙선재를 지을 때 개조하여 대왕대비인 순조비 순원왕후의 처소로 활용하였습니다. 단종이 이곳에서 머물다가 영월로 떠났으며 세조가 승하한 곳입니다. 그 후 궁이 없어졌다가 정조가 문효세자의 글 읽는 장소로 삼고자 다시 지었습니다. 석복헌은 여러 문의 창살에서 여성의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안방에서 행랑채로 내려가면서 높이도 낮아지는데 이는 그 방주인의 신분을 나타낸 것입니다. 또 쪽마루가에 난간을 해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수강재는 이름에 ‘목숨 수’와 ‘편안할 강’자가 들어 간 것으로 보아 왕실의 여인들 가운데 나이가 많은 사람이 살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헌종의 할머니 순원왕후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며 1989년까지 덕혜옹주의 거처로 사용되었습니다.

창경궁의 정문과 금천교
창덕궁 성정각 일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