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의 정문과 금천교
문화원Ⅰ 2013.11.29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보물 제38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창경궁 창건 때인 1484년(성종 15)에 처음 지어졌고, 1592년에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광해군 8년(1616년)에 중건한 것으로 건립연대가 오래된 편에 속합니다. 그뒤 1834년의 보수 등 여러 차례의 수리를 겪으려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으로 지어졌으며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동향이며, 문 왼쪽인 서북쪽 모서리에 계단이 있어서 위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다른 궁궐의 정문이 남향하고 있는 것에 비해 동향인 것이 특징적입니다.  조선 초기의 양식을 보이며 안정되고 차분한 인상을 주는 조선 중기의 대문입니다.

궁궐의 문은 왕과 백성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창경궁 홍화문 앞에서 영조는 균역법의 실시에 대해 백성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1750년(영조 26) 종래 인정(人丁) 단위로 2필씩 징수하던 군포(軍布)가 여러 폐단을 일으키고, 농민 경제를 크게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2필의 군포를 1필로 감하기로 하는 한편 균역청을 설치하여 군포를 감한 것에 따른 부족재원을 보충하는 대책을 마련하게 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전세(漁箭稅)·염세(鹽稅)·선세(船稅) 등을 균역청에서 관장하여 보충한다는 등의 균역법이 제정되어 1751년 9월에 공포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양반의 반대가 심해지자 영조가 친히 홍화문 앞에 나와 균역법의 시행여부에 대한 백성들의 의견을 물었던 것입니다.
또한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며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주는 사미행사를 시행하였습니다. 그 모습은 <홍화문사미도>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궁궐을 지을 때는 꼭 다리를 둡니다. 집을 지을 때 좋은 땅을 가려 짓는데, 좋은 집자리의 조건으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배산임수입니다. 배산임수란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땅을 말합니다. 따라서 궁궐은 나라에서 가장 좋은 곳에 지으려 했습니다. 창경궁의 금천교는 옥천교입니다. 궁궐 전면에 흐르는 명당수 위에 가설된 금천교로 옥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입니다. 궁궐에 있는 금천교 가운데 유일하게 자연수가 흐르는 곳입니다. 홍예다리 사이에 귀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귀면(나티, 청정무사) : 홍예 사이에 귀면을 조각하여 벽사와 수호의 역할을 합니다.
-돌짐승 : 궁궐을 들어가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창경궁의 정전, 명정전 일곽
낙선재 일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