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의 정전, 명정전 일곽
문화원Ⅰ 2013.12.06
 


명정문은 ‘밝은 정치를 여는 문’이라는 뜻으로 보물 제38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484년(성종15년) 창경궁을 세울 때 지어졌지만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이후 광해군 때 명정전과 함께 재건되어 오늘 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회랑 중 남쪽과 북쪽 일부분은 일제시대때 철거되었다가 1986년 복원되었습니다. 행사 전 대기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명정전의 동서 중심축선 상에 놓여있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m 벗어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아울러 일반적인 궁궐의 정전과 문이 남향을 하고 있는데 반해,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과 함께 동향을 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건물의 짜임이 착실하여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는 문으로 궁궐 중문건축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명정전은 국보 제  266호로 지정되었으면 창경궁의 법전으로 나라의 큰 행사가 치러졌던 곳입니다. 명정전은 광해군 8년에 중건된 건물로 창덕궁 인정전보다 역사가 오래되었습니다. 단층지붕으로 인종이 즉위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창경궁의 특성상 왕이 직접 정무를 행한 예가 많지는 않습니다. 중종이 환경전에서 승하하였으므로 인종이 이 궁에서 즉위하였습니다.
명정전에서는 왕비를 맞이하는 의식이 치러지기도 했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행사에 속했습니다. 이때에 왕과 왕비는 가장 격이 높은 옷을 입는데 왕의 옷은 아홉 가지 무늬를 수놓아 ‘구장복’이라 하였으며, 왕비의 옷은 꿩을 수놓아 ‘적의’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임금이 매일 신하들의 인사를 받았는데 이것을 ‘조회’라고 합니다. 조회에는 조참, 상참이 있습니다. 매일 아침 회의실에서 간단하게 인사를 받는 것을 상참이라고 하고, 정해진 날에 큰 행사로 치르는 것을 조참이라고 합니다. 조참은 법전과 박석이 깔린 조정에서, 상참은 편전에서 열렸습니다.
조하, 진하 등의 행사를 하는 곳으로 박석이 깔린 마당을 조정이라 하며 명정전 양 쪽 행각은 두 칸 폭으로 복랑이라고도 하며 통로구실을 하기도 하고 창고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영조 때는 재실로 쓰인 적도 있고 정조는 자신의 친위부대로 장용영을 설치하고 내장용영을 주둔시켰습니다.

-명정전의 머름 : 다른 궁궐과 달리 전돌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월대 : 상하월대로 나누어 조성되었으며 궁궐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답도 : 봉황을 조각하여 왕의 권위를 드러냈습니다.
-단청 : 권위를 상징하며 건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 조선의 관직(문반 무반 양반제로 18품계, 실제로는 30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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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상관=대감+영감

당하관=참상관+참하관


 

창경궁의 편전, 문정전
창경궁의 정문과 금천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