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문당과 함인정
문화원Ⅰ 2013.12.27
 


´숭문´이란 학문을 숭상한다는 의미로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입니다. 경연은 왕이 신하들과 학문토론을 통해 그 결과를 정치에 반영하기도 하고 신하들 또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숭문당은 다른 건물들에 비해 크기가 아담하고 주위에 임금이 거처하던 문정전 외에 다른 건물들이 없기 때문에 사색이나 독서 등에 적합한 구조입니다. 그래서인지 영조는 특히 숭문당을 많이 활용하였는데 이곳에서 친히 태학생들을 불러 친시를 보기도 하고 어주를 하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인조 11년(1633)의 <창경궁수리소의궤>에 ‘12칸의 숭문당을 수리하였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光海君) 때 창경궁이 건립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숭문당이라는 현판의 글씨는 영조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사진 지형을 활용하여 앞쪽에 초석을 세우고 툇마루를 설치하여 정자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순조 30년(1830년)에 불이나 이 해 가을에 다시 세웠습니다.

▶ 임금님의 하루
왕은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서 궁궐의 어른들에게 아침인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하루는 신하들과의 조회, 회의, 면담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활쏘기나 말 타기도 임금님이 해야만 하는 공부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처럼 임금님은 몸과 마음 모두를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셨습니다. 또한 밤에 궁궐을 지킬 군사는 물론 함부로 궁궐을 드나들지 못하도록 그 날의 암호까지 정했습니다.

오전 5시

기상

간단한 식사

오전 6시

6품관 이상의 관리들과 조회

당상관들로부터 보고받는 시간

조강

아침식사

식사 전후로 문안인사

정오

현안이 있을 경우 해당관리와 논의

주강

오후 3시

상소 검토 등 일상 잡무

때로는 체력단련(사냥, 활쏘기)

오후 7시

석강

휴식 및 독서

오후 11시

취침



이곳 함인정부터는 창경궁의 내전영역에 속합니다. 창경궁은 내전, 즉 생활공간이 발달한 궁궐입니다. 왕과 왕실 가족이 사는 공간인 내전이 외전에 비해 더 많았던 궁궐입니다. 하지만 이들 건물들은 매 시대마다 그 기능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건물만 몇 개 남아있지만, 옛 궁궐그림을 보면 건물들은 담과 방들로 둘러싸여 있고 대문도 따로 있었습니다.
함인정은 인경궁의 함인당을 옮겨 지은 건물입니다. ‘인자로움에 흠뻑 취하다’라는 뜻의 정자입니다. 지붕의 생김새가 날렵하고 경쾌한 아름다움을 지녔습니다. 네 방향으로 고개지의 시가 걸려있습니다. 원래 광해군이 인왕산 아래 지었던 인경궁의 전각이었던 것을 옮겨왔습니다. 영조가 과거 급제자에게 하사주를 내렸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과거제도

임금님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고 지킬 신하는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하였습니다. 과거시험에서 일등한 사람을 장원급제자라고 하고 합격증서인 홍패를 받고 머리에는 어사화를 씁니다. 장원급제자는 임금님께서 친히 어사주를 하사하시기도 했습니다.

문과(33명)

소과(1차시험)

1차, 2차(생원과 / 진사과)

대과(2차시험)

1차, 2차, 3차

무과(28명)

1차, 2차, 3차

잡과

역과(통역), 율과(법률), 의과(의학), 음양과(천문지리)등


▶함인정 시 감상하기

春水滿四澤

봄에 물은

모든 못에 가득하고

춘 수 만 사 택

夏雲多奇峯

여름 구름이

묘한 봉우리에 많기도 해라

하 운 다 기 봉

秋月揚明輝

가을 달은

높이 떠 밝게 비추고

추 월 양 명 휘

冬嶺秀孤松

겨울 언덕 소나무의

외로움이 아름답구나

동 령 수 고 송


이 시는 도연명의 문집인 [도정절집]에 실려 있어서 오래전부터 도연명의 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문진보] 전집에도 도연명의 작품으로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진나라의 유명한 화가인 고개지의 작품으로 정정 되었습니다.

환경전과 경춘전
창경궁의 편전, 문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