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전과 경춘전
문화원Ⅰ 2014.01.02
 


환경전은 1484년 성종 때 창경궁이 창건되면서 임금이 거처하는 침전으로 건립되었습니다. 통명전(通明殿), 경춘전(慶春殿), 양화당(養和堂)과 함께 창경궁의 내전(內殿)을 구성하는 건물입니다. 1544년 중종(中宗)이 환경전에서 승하한 것으로 기록되어 전하며, 임진왜란 때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광해군(光海君) 때인 1616년에 다시 건립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주역이었던 이괄(李适)이 1624년에 난을 일으키면서 또다시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으며 1633년에 다시 환경전을 복원하였습니다. 1830년 순조(純祖) 즉위 30년에 또다시 창경궁에 큰 화재가 일어나 환경전이 소실되었다가 1833년에 또다시 복원하였습니다.
환경전은 창경궁에서 주로 남자들이 기거 했던 곳으로 이곳에서소현세자가 승하하였습니다.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이후 청에 인질로 잡혀가 서양문물을 배우고 돌아왔으나 독살 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이곳은 효명세자가 승하한 곳으로 빈전으로 사용하였으나 화재가 일어났고 당시 재궁을 가까스로 구해냈습니다. 영조는 이곳을 편전으로 사용하였으며 영조5년 사도세자에 대리청정을 명하고 정무보고를 받았습니다.

 
경춘전은 내전의 침전으로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였고 편액은 순조의 어필입니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후 순조 때 또 다시 소실, 순조34년 재건되었습니다. 경춘전은 정조, 헌종이 탄생한 곳입니다. 혜경궁 홍씨가 정조를 낳을 때 사도세자가 경춘전에서 흑룡이 내려오는 태몽 꾸고 신기하게 여겨 꿈에서 본 용을 그림으로 그려 걸어두었다고 전해집니다. <궁궐지>에는 정조가 자신이 태어난 경춘전을 ‘탄생전’이라는 현판을 경춘전 남문에 직접 써서 걸었고, 자신을 낳을 때 겪었을 어머니의 고통을 생각하는 ‘경춘전기’를 써서 북문에 걸어 둘 만큼 경춘전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혜경궁 홍씨는 노후의 시간도 주로 경춘전에서 보냈습니다. <한중록>에는, ‘1746년 정월 경모궁(사도세자)과 내가 모두 경모궁으로 옮겨가니 그때가 12세라. 경춘전은 화평옹주 거처인 연경당은 물론 선희궁의 거처인 집복헌에도 가까우니 선희궁께서도 자주 오시고, 화평옹주와도 친밀히 지냈다.’고 하여, 영조대 경춘전을 중심으로 왕실 여성들이 친밀하게 생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춘전은 인수대비 한씨 즉 소혜왕후가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인수대비는 학식이 깊어 정치에 많은 자문을 하였고,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인 『내훈(內訓)』을 간행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인수대비는 말년에 이르러 폐비윤씨 사건을 알게된 손자 연산군에 의해 폭력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1504년(연산군 10) 4월 인수대비는 경춘전에서 68세를 일기로 승하하였습니다. 
인현왕후(1667~1701)도 경춘전에서 거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왕비의 자리에서 폐출되고 복위되는 등 정치적 파란을 겪은 인현왕후는 복위된 이후 경춘전에서 생활하다가, 1701년(숙종 27) 8월에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때, 그녀의 죽음이 병이 아닌 장희빈의 저주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고 이후 궁녀의 고변으로 장희빈을 사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경춘전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여인들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창경궁의 중궁전, 통명전
숭문당과 함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