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의 중궁전, 통명전
문화원Ⅰ 2014.01.17
 


통명이란 음과 양이 두루 통하고 하늘의 밝음이 깃든다’는 의미입니다. 내전의 으뜸 건물로 왕비의 침전(중궁전)으로, 왕과 왕비 합궁 시 사용하였습니다. 성종15년(1484)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광해군8년(1616) 다시 중건되었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이괄의 난을 겪으며 소실되고 정조14년(1790) 소실되었다가 순조34년(1834)재건되었습니다. 정면7칸, 측면4칸으로 되어 있고 단층이며 다른 궁궐의 왕비 처소처럼 이곳도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 지붕으로 내부에 금박으로 편액에 ‘통명전’이라 씌어있는데 이것은 순조의 어필입니다.
통명전의 서쪽으로는 돌난간을 두른 네모난 연지와 둥그런 화강암 샘이 있으며 뒤뜰에는 화단을 만들어 놓았고 열천(매우 차가운 샘, 영조의 모후 숙빈 최씨가 매우 아껴 왕위에 오른 영조가 열천이라 직접 글을 씀)이 있습니다.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 의하면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가 명정전에서 시작하여 통명전에서 마친 것으로 되어 있고 숙종 때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흉물을 통명전 일대에 묻어 사약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 명성황후의 시녀였던 고대수라는 여인이 갑신정변 때 통명전에 폭탄 투척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연당 : 통명전 주위는 지대가 낮아 습했으므로 솟아나는 샘물을 이용하여 연당을 마련하였습니다. 성종 때 구리로 수통을 설치했는데 사치스럽다는 신하들의 비판으로 구리수통을 철거하고 돌로 대치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절약을 미덕으로 생각하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고대수 폭탄투척사건 : 고대수의 본명은 이우석입니다. 수호지에 나오는 여장부의 이름을 따서 고대수라 불리었습니다. 37세에 명성황후의 시녀로 입궁하였는데, 덩치가 크고 기운이 좋았으며 단정치 못한 용모에 하급 무수리였습니다. 10년 가까이 김옥균과 알고 지내면서 궁 안의 비밀스런 일들을 알려주었으며 갑신정변을 일으킬 때 통명전에서 폭약을 터트려 일익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갑신정변의 실패로 궁중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어 공개처형 당하였습니다.


▶왕비의 삼간택

초간택

30여명의 처녀 중 6~10명을 뽑음

4인교를 타고 몸종, 유모, 수모를 동반

재간택

2주일 뒤에 초간택 처녀 중 3명을 뽑음.

6인교를 타고 50여명이 호위

삼간택

15~20일 뒤에 뽑음

간택된 처녀는 별궁으로 보냄


▶정순왕후 간택이야기
정순왕후는 안동김씨 김 한구의 딸입니다. 영조 66세에 15세 소녀 정순왕후를 계비로 들입니다. 재간택 후 영조가 친히 불렀습니다. 방석이 세 개 놓여있고 그 위에 부친의 이름이 놓여있었습니다. 다른 두 명은 방석위에 사뿐히 앉았습니다. 그러나 정순왕후는 방석 옆에 앉았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아비의 이름위에 앉을 수 없노라 했습니다.
다시 왕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이 무엇이더냐?” 다른 후보들은 산과 물이라고 대답하였으나 정순왕후는 “人心이옵니다” 인심은 결코 그 깊이를 잴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또 왕이 질문을 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더냐?” 다른 후보들은 모란 과 매화라고 대답하였으나 정순왕후는 “목화꽃이옵니다” 다른 꽃들은 일시적으로 좋으나 목면은 천하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양화당, 영춘헌 일대
환경전과 경춘전